맥주와 위스키를 전공한다
Brewing and Distilling at Scotland
ADMISSIONS · 김형균 · 2026-10-13
얼마 전 소개한 ‘와인을 전공하는 대학’ 이야기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줘서, 이번에는 또 어떤 술을 대학에서 전공할 수 있을지 찾아본 에디터 김형균이다. 와인이 된다면 맥주와 위스키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다.
그것도 세계적인 위스키 생산지인 스코틀랜드에서 정식 학사학위로 공부할 수 있다.









Heriot-Watt University에는 BSc (Hons) Brewing and Distilling이라는 전공이 있다.
이름 그대로 양조와 증류를 배운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 했던 코넬대의 와인 교육과정과 마찬가지로, 이 전공또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술 만드는 학과보다 과학 전공에 훨씬 가깝다.
맥주와 위스키를 대학에서 전공한다

Heriot-Watt University의 Brewing and Distilling은 Edinburgh에서 운영되는 학부과정이다.
대학은 영국에서 이와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유일한 학부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한다. 학생들은 맥주와 증류주의 생산만 배우지 않는다. 생물학과 화학, 공정공학, 수학을 바탕으로 음료 산업 전체를 공부한다.
맥주 한 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곡물을 고르고 맥아를 만든 뒤 당을 추출한다.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고, 원하는 향과 맛이 나오는지 확인한다. 오염 여부를 검사하고 완성된 제품을 여과해 병에 담은 뒤 시장에 내놓는다.
위스키에는 증류와 숙성도 더해진다.
마트에서 보는 술 한 병 뒤에 생물학과 화학, 공학, 품질관리, 유통이 모두 붙어 있는 셈이다.
Heriot-Watt는 이 모든 단계를 하나의 전공으로 묶었다.
이 학교는 120년 넘게 술을 가르쳐왔다

처음 들으면 최근에 만들어진 독특한 전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Heriot-Watt에서 양조와 증류 교육이 시작된 것은 1903년이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1989년에는 International Centre for Brewing and Distilling(ICBD)이 설립됐다. 현재 ICBD에서는 원료와 맥아 제조, 생산공정 개선, 지속가능성, 생화학, 미생물학 등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즉 이 전공은 학생들이 술을 좋아해서 만든 학과와는 거리가 멀다.
스코틀랜드에는 거대한 위스키 산업이 있고, 맥주와 증류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문인력을 교육하기 위해 오랫동안 발전해온 산업형 전공에 가깝다.
2025년 Scotch Whisky의 전 세계 수출액은 약 53억 파운드였다. 매초 약 43병이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각지로 수출되며, 관련 산업은 스코틀랜드에서 4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지원한다.
술이 거대한 산업을 이룬 지역에서 술을 만드는 과학을 대학 전공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첫해부터 위스키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Brewing and Distilling 전공이라고 하면 입학하자마자 맥주부터 만들 것 같지만 실제 교육과정은 다르다.
1학년에는 Introductory Biology, Chemistry for the Life Sciences, Introduction to Process Engineering 같은 기초과목을 공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조와 증류가 결국 과학이기 때문이다.
맥주의 핵심인 발효만 봐도 그렇다. 효모라는 미생물이 당을 이용해 알코올과 여러 부산물을 만든다. 곡물의 전분을 발효 가능한 당으로 바꾸려면 효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온도와 압력, 열과 물질의 이동도 이해해야 한다.
학년이 올라가면 곡물과 맥아, 효모 과학, 미생물학, 생화학, 생산공정, 식품안전, 품질관리, 향미 평가, 분석화학 등으로 공부 범위가 넓어진다.
결국, 이 전공에서 술을 공부한다는 것은 술의 종류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술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양조장에서 시작하는 오늘의 공부

교과서로 발효를 배우는 일과 실제 발효조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일은 다르다. 그래서 Heriot-Watt에는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실제 시설이 있다.
대학은 학생들이 교내 양조장과 증류시설, 정류 실험실에서 이론을 생산에 적용한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은 원료가 최종 제품으로 바뀌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한다. 예를 들어, 맥주를 만든다면 먼저 원료와 효모를 선택하고 발효조건을 관리한 뒤 만들어진 제품의 특성을 분석한다. 같은 원료를 사용해도 효모와 온도, 발효조건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맛있는 술이 나왔는지가 아니다.
제품이 항상 같은 품질로 나오는지, 미생물에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향과 맛에 이상은 없는지, 생산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는지까지 찾아야 한다.
대학에서 술을 만든다는 표현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험실 안에서는 상당히 진지한 품질관리 문제가 된다.
술 맛을 보는 일도 과학이 된다

교육과정에는 Flavour Assessment, 즉 향미 평가도 포함된다.
이름만 들으면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수업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업 역시 단순히 술이 맛있는지 없는지를 이야기하는 과정과는 다르다.
제품에서 특정 향이 나는 이유를 파악하려면 원료와 효모, 발효, 숙성, 저장조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수 있다.
맥주나 위스키에서 원하지 않는 향이 발견됐다면 취향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제조공정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래서 향미 평가와 분석화학, 미생물학, 식품안전, 품질관리, 품질보증을 함께 배운다.
술을 맛보는 능력도 산업 현장에서는 품질을 판단하는 분석 도구가 된다.
Heriot-Watt는 맥주의 향미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혼탁이 왜 생기는지 연구한다. 효모와 발효, 증류도 주요 연구 대상이다.
한 모금의 맛을 설명하는 데도 생각보다 많은 과학이 필요한 것이다.
맥주만 배우는 것도, 위스키만 배우는 것도 아니다

전공 이름에는 Brewing과 Distilling이 함께 들어간다.
Brewing은 대표적으로 맥주처럼 곡물을 발효해 만드는 음료의 생산과 연결된다. Distilling에서는 발효액을 증류해 알코올과 향미 성분을 분리하고 농축하는 법을 다룬다.
하지만 Heriot-Watt의 교육범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료와 발효에서 출발해 화학공학, 병입, 포장, 마케팅까지 이어진다. 학생은 선택과목을 통해 경영과 회계·재무, 운영관리, 창업, 지속가능성도 공부할 수 있다.
그럼 왜 술을 만드는 학생에게 회계와 마케팅까지 가르치는 것일까?
졸업생 모두가 실험실에서 효모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맥주회사와 증류소에는 생산을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품질을 확인하는 사람도 필요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사업을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작은 Craft Brewery를 직접 창업한다면 생산과 품질뿐 아니라 원가와 판매까지 이해해야 한다.
한 병을 만드는 대에 다양한 과학과 산업이 들어가기에, 이 모든 것들이 한 전공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1년 동안 산업현장으로 나갈 수도 있다

Heriot-Watt에는 일반 BSc (Hons) Brewing and Distilling 외에 Diploma in Industrial Training이 포함된 과정도 있다.
학생은 산업현장에 배치돼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다.
일반 과정은 3~4년, 산업훈련을 포함한 과정은 4~5년으로 구성된다.
현장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수천 또는 수만 리터 단위로 제품을 생산하는 실제 공장에서는 학교 실험실과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생산일정을 관리해야 하고, 원료 품질의 차이에 대응해야 하며, 설비를 안전하게 운영하고, 제품이 기준을 만족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Heriot-Watt는 크고 작은 양조·증류 관련 기업들과의 산업 연결을 통해 학생들이 업계를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해당 학위는 Institute Of Brewing And Distilling에서 인정받고 있다.
졸업 전에 실제 주류 산업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길이 교육과정에 포함된 셈이다.
IB 학생이라면 Biology와 Chemistry만 잘하면 될까

이색 전공이라고 해서 입학조건까지 특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전형적인 과학계열 입학조건을 요구한다.
Heriot-Watt가 공개한 2027년 입학 기준에 따르면 IB 학생의 표준 입학조건은 총점 29점이며, Mathematics와 Biology 또는 Chemistry를 포함해야 한다. 또한, 두 필수과목 모두 Higher Level 5가 필요하다. A-Level 기준으로는 BBC가 표준조건이며, Mathematics와 Biology 또는 Chemistry를 포함하고 필수과목에서 BB가 필요하다.
이 조건에서도 전공의 성격이 드러난다.
술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준비할 수 있는 학과가 아니다. 수학과 생물학 또는 화학을 가지고 들어가는 과학계열 학위다.
졸업하면 양조장 사장만 되는 것은 아니다

졸업 후 진로도 생각보다 넓다.
양조장이나 증류소에서 생산을 담당할 수도 있고, 품질관리와 품질보증, 제품개발, 공정관리와 연구 분야로 갈 수도 있다. 산업훈련 과정에 관해 Heriot-Watt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졸업생의 90%가 졸업 15개월 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해당 과정 졸업자를 대상으로 대학이 공개한 취업자료이기에, 모든 졸업생이 맥주나 위스키 회사에 취업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학이 소개한 졸업생 가운데 실제 Brewer로 일하는 사례도 있다. 한 졸업생은 Heriot-Watt에서 배운 양조 과학과 기술이 현재 Brewer로 일하는 데 직접적인 기반이 됐다고 설명한다.
산업 규모도 역시 작지 않다.
Scotch Whisky Association에 따르면 2025년 Scotch Whisky는 세계 160개가 넘는 시장으로 수출됐다. 수출액은 약 53억 파운드에 달했다.
우리 눈에는 마트 선반 위의 술 한 병이지만, 그 뒤에는 농업과 미생물학, 화학, 공학, 제조, 품질관리, 국제무역이 연결된 산업이 있다.
그 산업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결국 술을 전공한다는 건 처음 들으면 꽤 웃긴 전공이다.
“대학교에서 뭐 전공해?”
“맥주랑 위스키.”
하지만 교육과정을 조금만 살펴보면 웃음기가 금세 사라진다.
생물학과 화학을 배우고 효모와 미생물을 연구한다. 곡물이 어떻게 발효되는지 이해하고 생산공정을 설계한다. 완성된 제품의 성분과 맛도 분석한다. 제품이 안전한지 검사하고 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배운다.
마지막에는 이를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본다.
술을 마시는 법을 배우는 전공이 아니다.
술이 왜 그렇게 만들어지는지를 배우는 전공이다.
세계적인 위스키 생산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그 질문이 120년 넘게 대학의 연구와 교육 주제가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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