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콘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On, Wisconsin

CAMPUS LIFE · 김형균 · 2026-07-24

위스콘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안녕, 처음으로 글을 써보려 하는 유학생 에디터 김형균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을 누이는 고유한 취미가 하나쯤 있는데, 내게는 그게 ‘글쓰기’였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복잡한 상념들을 활자로 조용히 비워내고, 그렇게 정제된 마음의 조각들을 타인과 나누는 일. 그 고요한 시간은 오랫동안 내 유일한 도피처이자 위안이었다.

하지만 낯선 타지에서의 유학 생활은 생각보다 팍팍하고 지독했다. 쏟아지는 과제와 숨 가쁜 일상에 치이다 보니, 텍스트를 읽고 쓰는 일보다 스마트폰의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기대는 날이 많아졌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돌보던 감각마저 점차 흐릿해질 무렵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늦은 퇴근길,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페달을 밟으며 밤공기를 가르던 순간. 뺨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과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듯한 고요한 거리의 풍경을 마주하며, 불현듯 짙은 갈증이 일었다. 완벽하게 멈춰있는 듯하지만 쉼 없이 일렁이는 내 안의 감정들과 이 찰나의 해방감을 다시 어딘가에 활자로 꾹꾹 눌러 담고 싶어졌다.

우연찮게도 참 감사한 타이밍에 BE.KNEW라는 공간을 만났다. 멈춰 있던 펜을 다시 쥐고, 내 글을 다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많은 글을 BE.KNEW에 올려보고자 하니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록으로, 지독한 유학 생활 속에서도 나를 버티게 해 준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내가 위스콘신을 좋아하는 이유

지독한 시험 기간이 끝난 직후의 해방감을 아는가. 밤샘으로 찌든 몸을 이끌고 밖을 나섰을 때 훅 끼치는 서늘하고도 맑은 공기. 스마트폰의 짧은 도파민에 절여 지내다가도, 조금 길게 사유하고 오래 붙들고 생각하고 싶어질 때면 여지없이 이 도시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린다. 내가 위스콘신을 사랑하게 된 건, 어쩌면 거창한 학문적 성취나 타이틀이 아니라 그 찰나의 공기와 장면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유학 생활을 버텨내고 있는 이들에게, 매디슨이라는 도시는 때론 가혹하고 때론 다정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잊을 수 없는 위스콘신의 파편들이 있다.

아침 8시의 배스컴 언덕, 그리고 캐피톨 

아침 첫 수업.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배스컴 언덕을 오른다. 팍팍한 일정에 치여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쯤,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거짓말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붉게 달아오르는 아침 해가 주 의사당의 둥근 지붕 위로 부서지는 찰나.

그 웅장하고도 고요한 일출을 마주하면, 묘하게도 오늘 하루를 버텨낼 알량한 용기가 생긴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등교하는 길일 뿐이겠지만, 그 짧은 오르막길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는 여유. 그건 위스콘신이 매일 아침 건네는 묵묵한 응원과도 같다.

멘도타 호수와 맥주, 완벽한 마침표 

숨 막히는 중간고사가 끝난 날의 목적지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멘도타 호수, 그리고 메모리얼 유니언 테라스. 결과에 대한 미련이나 앞으로 남은 과제의 압박은 잠시 접어둔다.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보며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넘기는 순간. 쌉쌀한 알코올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감각은 어떤 화려한 파티보다 달콤하다.

호수 위로 부서지는 윤슬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치열했던 어제의 스트레스마저 이 거대한 물결 어딘가로 조용히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완벽하게 멈춰있는 듯하지만 쉼 없이 일렁이는 호수처럼, 유학생들의 치열한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고단함을 씻어내는 퇴근길 자전거, 그리고 오로라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퇴근길이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때릴 때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복잡한 공식이나 논문 구절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듯하다.
게다가 매디슨의 밤은 가끔 믿을 수 없는 선물을 던져준다. 운이 좋은 날이면 캄캄한 밤하늘 위로 녹색과 보라색 빛이 너울거리는 오로라가 일렁인다. 굳이 아이슬란드나 캐나다 북부까지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우주의 신비. 멍하니 밤하늘의 빛 무리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내가 안고 있던 학업의 압박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아주 작고 가볍게 느껴진다.

그렇게 광활한 하늘 아래서 무거운 상념들을 덜어내고 나면, 비워진 마음 한구석에 다시 내일을 마주할 잔잔한 힘이 차오르곤 했다. 거창한 위로의 말이 없어도, 이 다정한 도시가 내어주는 고요한 찰나들이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 준 셈이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어, 지금 이 글을 쓰는 2026년 7월의 매디슨에도 한여름의 짙은 녹음과 선선한 바람이 내려앉아 있다. 언젠가 입시라는 험난한 마라톤을 마치고 글로벌 무대에 설 이들도, 각자만의 '위스콘신' 같은 다정한 안식처를 하나쯤 품게 되기를. 치열한 질주 뒤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얼마나 달콤한지, 밤하늘의 고요함이 얼마나 깊은 위안이 되는지, 그 온전한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캠퍼스 #라이프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