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이 강의실인 코넬대 와인학 전공을 들여다봤다
When the Vineyard Is the Classroom
CAMPUS LIFE · 김형균 · 2026-09-09
안녕, 술은 한 모금도 못 마시면서 와인 라벨 구경만 좋아하는 에디터 김형균이다. 얼마 전 미국 대학 학과 목록을 뒤적이다가 이상한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Viticulture and Enology" — 포도재배학과 양조학. 코넬대에 정말로 존재하는, 학사 학위까지 나오는 정식 전공이었다. 궁금해서 자료를 파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가져왔다. 포도밭이 강의실이 되는 전공

이 전공은 코넬대 농생명과학대학(College of Agriculture and Life Sciences, CALS)에 속한 정식 이학사(BS) 과정이다. 2008년 뉴욕주 교육부와 뉴욕주립대(SUNY) 승인을 받아 독립 전공으로 출범했다. 그전에도 식물학·식품과학 전공 안에서 포도·와인 트랙을 밟던 학생이 38명쯤 있었다고 한다. 이미 있던 수요를 정식 학과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름에 두 단어가 붙은 이유도 분명하다. Viticulture(포도재배학)는 포도나무를 키우는 농업 쪽이고, Enology(양조학)는 그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화학·미생물학 쪽이다. 서로 다른 학문이지만 와인이라는 결과물 앞에서는 떼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커리큘럼도 화학·생물학·식물과학·통계학 같은 이과 기초와, 양조 실습, 포도밭 경영, 경제학, 마케팅 같은 실무·경영 과목이 함께 짜여 있다. 와인을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라 경영하는 법까지 배우도록 설계돼 있다.
포도 재배와 양조라고 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전통 산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전공은 철저히 뉴욕주에 뿌리를 둔다. 뉴욕은 쌀쌀한 기후, 독특한 토양, 그 지역에서만 자라는 포도 품종과 병충해를 안고 있다. 코넬 커리큘럼은 이런 뉴욕 리전의 특수성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더 넓은 지역에도 통하는 보편적인 지식을 함께 가르친다고 밝힌다.
학교 안에 진짜 포도밭과 양조장이 있다

가장 신기했던 건 이 모든 게 교재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코넬 본교(이타카)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실습하는 포도밭이 실제로 있고, 프랑스 품종을 포함해 25개 품종이 자란다. 강의실 문을 나서면 바로 실습장인 구조다.
양조 실습도 마찬가지다. 캠퍼스 안 스토킹 홀(Stocking Hall)에는 'Cornell Teaching Winery'라는 교육용 양조장이 있다. 학생들은 여기서 포도 수확 시점을 판단하고, 포도송이를 파쇄하고 줄기를 제거하고, 발효 중인 와인의 화학적·향미적 특성을 분석하고 조정하는 법을 배운다. 코넬 뉴스에서 이언 머윈(Ian A. Merwin) 교수는 "와인 양조는 매우 손을 많이 쓰는 과정이라, 다양한 장비와 방법에 대한 실제 경험이 좋은 학부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책으로 배우는 화학 공식과, 포도즙이 발효되며 온도와 냄새가 시시각각 바뀌는 걸 지켜보는 경험은 전혀 다른 배움이다. 이 전공이 스스로를 '이론과 실습이 함께 가는 학과'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는 듯하다.
메인 캠퍼스보다 더 중요한 곳, 제네바

사실 이 전공의 진짜 심장부는 이타카 본교가 아니다. 이타카에서 차로 좀 떨어진 뉴욕주 제네바(Geneva)에 '코넬 애그리테크(Cornell AgriTech)'라는 연구 단지가 있다. 여기에 와인 양조·발효를 연구하는 실험실(Vinification & Brewing Lab), 식품과학 연구실, 크래프트 음료 분석 실험실까지 전문 시설 세 곳이 모여 있고, 학과의 연구 기능 대부분을 이곳이 맡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과는 뉴욕주에서 포도 산업이 활발한 지역마다 거점을 따로 두고 있다. 이리호 인근의 '레이크 이리 리저널 그레이프 프로그램', 허드슨밸리의 연구소, 롱아일랜드의 원예 연구·확장 센터까지.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뉴욕주 곳곳에 이 학과의 촉수가 뻗어 있다.
한 학과가 이렇게 여러 지역에 실물 연구 기지를 두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학생 입장에서는 그냥 '와인을 좋아해서' 고르는 전공이 아니라, 뉴욕주라는 산업 생태계 안에서 현장 데이터를 다루며 배우는 전공에 가깝다.
졸업 전 최소 한 번은 현장에 나간다

이 전공은 인턴십을 필수 졸업 요건으로 못 박아 뒀다. 최소 한 번, 많은 학생은 두세 번을 채운다고 한다. 기회는 부족하지 않다. 뉴욕주에는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약 1,400개 있어서, 학교 인근에서만 찾아도 실습할 곳이 넉넉하다. 뉴욕주 안에 갇혀 있을 필요도 없다. 미국 다른 지역이나 해외 와이너리에서 인턴십을 하는 학생도 있다.
인턴십을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짐작이 간다. 와인 산업은 매년 반복되는 농사 주기를 따라 돌아간다. 한 시즌을 통째로 현장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이 일이 어떤 리듬으로 흘러가는지 감이 안 온다.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이 수확철의 변덕스러운 날씨, 갑자기 앞당겨야 하는 수확 일정과 부딪치는 순간을 직접 겪어보라는 것이다.
취업을 생각해도 이 인턴십 경험은 이력서에서 결정적인 한 줄이 되기 쉽다. 포도밭 관리자나 와이너리를 직접 운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스무 살도 안 된 학생들은 와인을 어떻게 배우나

이쯤에서 당연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미국의 음주 가능 나이는 21세인데, 대학에 갓 들어온 열여덟, 열아홉 살 학생들은 이 전공에서 와인을 어떻게 다룰까. 코넬이 이 부분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는 학과 공식 자료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미국 여러 주에서 인가받은 교육 프로그램에 한해 미성년 학생의 시음을, 대개 삼키지 않고 뱉어내는 방식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이걸 코넬 학과에 그대로 갖다 붙여 단정하긴 어려우니, 이 글에서는 확인된 사실까지만 전한다.
학과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학생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시음만이 아니다. 발효 중인 와인의 화학 수치를 재고, 향미의 복합적인 속성을 정성·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운다. 코를 대고 향을 분석하거나 기기로 성분을 측정하는 작업이 시음 못지않게 비중 있게 다뤄진다는 얘기다.
와인 업계를 겨냥한 별도 프로그램으로 '에노서트(EnoCert)' 인증 과정도 있다. 이건 학부 전공생이 아니라 와이너리 현직 직원이나 관심 있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시음 실습을 포함한 감각 평가 과목을 운영한다. 학부 전공과는 별개 트랙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두자.
졸업하면 어디로 가나

이 전공을 마친 학생들의 진로는 이름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넓다. 포도밭 관리자(vineyard manager), 어시스턴트 와인메이커, 엔올로지스트(양조 전문가) 같은 현장직은 물론이고, 마케팅 전문가나 제품 개발 담당자로 식음료·농업 산업 전반에 진출하기도 한다. '내 손으로 와인을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와인 산업을 경영하고 알리는 사람'까지 이 전공 하나에서 갈라져 나온다.
과학 기초가 탄탄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화학·생물학·식물과학을 정규 커리큘럼으로 소화한 학생이라면, 와인 산업에 남지 않더라도 식품과학이나 농업 대학원, 다른 과학 분야로 방향을 트는 것도 자연스럽다.
결국 이 학과가 보여주는 건, 틈새 전공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과학·경영·현장 실무가 다 얽혀 있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이름만 듣고 좁게 상상했다가 커리큘럼을 들여다보면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어 놀라게 된다.
그래서, 이 전공은 누구에게 맞을까

BE.KNEW 독자 대부분은 IB나 A-Level 같은 해외 커리큘럼을 밟고 있을 텐데, 지원 절차 자체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 코넬은 국제 지원자 안내 페이지에서 A-Level, IB 같은 나라별 졸업 시험 제도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최종 성적이 아직 안 나왔으면 예상 성적(predicted marks)을 함께 내라고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지원자에게는 TOEFL 100점, IELTS 7.0 정도를 권장 기준으로 제시한다. 단, SAT·ACT에서 특정 점수를 받았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4년간 영어로 수업받았다면 이 요건은 면제된다.
이 전공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학생은 아마 두 부류다. 하나는 화학이나 생물 같은 과학 과목을 좋아하면서, 농업·식품 산업처럼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나오는 일에 끌리는 학생. 다른 하나는 와인이라는 산업 자체가 궁금해서 그걸 과학적으로 뜯어보고 싶은 학생이다. 반대로 이론 중심의 순수 학문을 좋아하거나 농업·현장 실습에 거부감이 있다면 잘 안 맞을 수 있다.
전공 이름만 보고 "와인 마시는 법 배우는 과 아니야?"라며 넘기기엔 아까운 커리큘럼이다. 포도밭과 실험실, 뉴욕주 곳곳의 연구 거점을 오가며 4년을 보내는 학과. 이런 것도 있다는 걸 알아두면, 언젠가 전공을 고민할 때 선택지 하나가 더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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